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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노이 수기 <2016년 9월 6일>
    수기/2016 하노이 2019. 11. 30. 15:30

    6일 (인천)

    - 잠을 뒤척이다 결국 제대로 못자고 출발이 지체됨. 집에서 엄마가 해준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고 렛츠 고.

    - 엄마한테 자동출입국심사를 추천해주고 싶었는데 의외로 공항리무진에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음. 면세점 쇼핑을 위해 카운터에 접수를 하고 빠르게 이동.

    - 출국심사장 안에서 발견한 자동출입국심사 등록접수처가 오전 10시까지만 오픈한다기에 엄마에게 적극 권면함. 연휴 전이라 공항 내부는 제법 한산한 편이었지만,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일들을 하다보니 실제로 면세점 안에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 그럼에도 어머니는 폭풍 쇼핑을 시전하셨다. 한 10분 정도 주어진 것 같았는데 그새 담배 한 보루와 설화수 화장품을 사셨다. 가격은…… 말하기도 싫고 기억하기도 싫다.

     

    - 우리가 탄 비행기는 비엣젯 항공에서 운영하는 비행기였는데 승강장이 매우 외진 곳에 있어서 출국심사를 받고 탑승하러 가기까지 10~15분 남짓 걸렸다. 급하게 예매했는데도 1인당 22만원 정도면 거의 얼리버드랑 비슷한 값이라 그냥 만족하고 탔다.

    - 물 한 모금에도 2달러씩이나 받는 얌체 서비스를 겪었다. 처음에는 뭐 이런 항공사가 다 있나 싶었지만 이제와서 보니 우리가 갈 베트남의 문화가 원래 이렇구나라는 걸 미리 느꼈다.

     

     

     

    하노이의 첫인상

     

     

    6일 (하노이)

    - 4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노이바이 공항에 도착. 인순이의 거위의 꿈을 기내에서 들려주는 데 이건 뭔가…… 싶었음. 저가항공이었지만 좌석이 다소 좁게 느껴진다는 점만 빼면 매우 괜찮았음.

    - 여유롭게 입국심사를 거친 후 우선 밥부터 먹기로 함. 사전조사대로 2층에서 환전을 하고 식당에서 쌀국수와 싱가폴 식 샐러드였나 시켰는데 비싸기만 하고 맛은 더럽게 없었다. 쌀국수가 이런 음식이었나 무척 고심했다. 4박 5일 동안 베트남 요리는 쳐다가도 못보겠구나.

    - 환전해서 970만 동 정도가 남았다. 1인당 삼십만 원씩 잡고 600달러를 챙겨온 줄 알았건만 그만큼도 안 되더라. 안 그래도 예산을 빡빡하게 짰는데…… 내심 불안했다.

    - 공항 로비로 나온 우리. 택시기사가 면허증을 보여주며 안내해준다. 한국인이냐고 물어보니까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I Love Korea, I Hate China라길래 웃었다. 택시에 탑승한 후 엄마가 궁금해하기에 중국과 베트남의 외교관계에 대해 설명해드렸다.

    - 엄마는 오토바이가 이렇게 많은데 교통이 어떻게 안전하냐고 궁금해하셨고 나는 구글 번역기로 택시 기사와 이야기를 하며 놀았다.

    - 다른 블로그에서 본 대로 공항택시는 바가지가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선 베트남 정부도 꽤나 신경을 쓰고 있기에. 우리는 약 34만 동을 내고 Hanoi Elegance Diamond Hotel에서 내렸다. 호텔 직원이 직접 창문으로 머릴 들이밀곤 영수증을 확인하더라. 그렇기에 따로 택시에서 바가지를 씌일 일은 없을 거라 믿었다. 이때까지는…….

     

    베트남식 환영인사

    - 호텔에서 베트남식 환영인사를 받았다. 주스는 맛있었는데 주전부리가 영…… 어느 견과류를 입에 넣고 씹었는데 딸기를 머금은 지렁이 맛이 났다.

    - 눈이 생선처럼 생긴 까까머리 청년이 우리가 묵을 방을 안내해줬다. 다소 피곤한 상태라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됐는데, 엄마 앞이라서 또 부끄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근성의 호텔보이는 기어코 우리들의 행선지를 알아내곤 인형극의 예매를 도와주겠다고 선뜻 나섰다.

    - 호텔 밖을 나서니 그새 비가 내린다. 이 역시 여행의 서막이었다. 아, 아무리 9월 초라도 우기에 베트남을 온 것은 실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우기가 맞나?). 호텔 직원은 머쓱한 표정으로 우산 하나를 건넸다.

     

     

     

    응옥썬 사당 

     

    - 비는 내리다가 소강되기를 반복했다. 덕분에 우산은 큰 짐이었다. 우리는 가장 먼저 호안키엠 호수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그때 잡상인이 우리에게 다가와 베트남식 전통 모자를 팔려고 했는데, 어차피 사려고 했던 거 잘됐다고 생각했다(너무 들떠있었다). 그런데 30만 동을 불기에 아, 얘네가 말로만 듣던 사기를 치는구나 싶어서 그냥 가려고 했더니 20만 동을 부른다. 손바닥을 펴보이며 안 산다는 뜻을 밝히니 웨잇 웨잇! 하며 10만 동 지폐를 내밀어 보인다. 엄마는 재빨리 한국 돈으로 환산 중, 오천 원이면 한 번 줘도 괜찮겠다 싶어서 샀다. 제딴에는 많이 깎았다고 여겼으니. 우산이 필요없어서 좋았다(나중에 검색해보니 한국에서도 오천 원이면 인터넷 배송으로도 사더라. 그렇지만 본전은 뽑았다고 생각한다).

    - 응옥썬 사당. 비가 와서인지 그닥 볼 것은 없었다. 길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는데 손을 내밀어도 도망가지 않는 것이 다만 신기했다.

     

     

    러따이또 황제 동상 

     

    - 지도를 보며 리타이또 황제 동상이 있는 공원에 도착. 의외로 가이드북에 적혀있는 것과는 달리 별로 볼 만한 게 없어서 실망했다. 우리는 계속 오페라하우스로 남하했다.

    - 너무 이른 시각에 짱띠엔 거리로 도착. 하노이는 외곽으로 멀리 뻗어 넓은 느낌이지만 중심가는 컴팩트했다. 급한 대로 현지인이 자주 간다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 24,000 동을 내고 브레이크 타임을 가졌다.

     

     

     

    짱띠엔 거리 

     

    - 그래도 시간이 한두 시간 남기에 오페라하우스에 도착. 오잉? 홈페이지에 따르면 공연이 없다고 하는데 대나무를 이용한 행위예술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일본계 혼혈 직원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기에(나는 샌프란시스코의 긍정적인 경험이 있어서 이미 반쯤 홀린 상태였다) 실장으로 보이는 사람과 이런저런 얘길 하고 인당 53만 동에 특석에 앉게 해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받는다. 그러나 엄마는 계획에 없는 지출이라며 맘에 안 들어했다. 계속 고민하고 있으니 실장이 내가 마음에 든다며 내일 공연 전에 다시 오면 이 가격 그대로 결제 가능하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떴다.

     

    - 그래도 시간이 남더라. 그래서 식당에 들어가려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비싸다. Club Opera Novel이란 곳인데 웬만하면 연인이랑 같이 온 게 아니라면 여긴 절대로 가지 말 길. 우리는 걸어서 그대로 호텔로 향했다.

    - 그러고보니 가는 길을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주로 여행에서 설명하고 안내하는 포지션에 있다보니 오키나와와 오사카에서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았다. 내심 뿌듯해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자유 여행에 대해서 심드렁하신 듯.

     

     

     

    나쁘지만은 않았던 인형 수상극 

     

     

    - 걸어서 호텔로 귀환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어디서든간에 저녁식사를 했어야 할 때였는데 어머니의 속이 좋지 않으셨다. 나 역시 잠깐이라도 졸으려면 위장을 비워놓는 습관이 있어서 바나나 한 개만 먹고 30분 간 휴식을 취했다.

    -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로비로 나서자 까까머리 직원이 탕롱 수상 인형 극장에 가겠냐고 물어본다. 그렇다고 했더니 여기서 가깝다며 직접 바래다주겠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 사람이 자식뻘이라서인지 소년의 친절한 서비스에 더욱 탄복하신 듯하다. 호텔에서 극장까지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입장 전 어머니는 어차피 5일간 있을 건데 그 직원에게 $10를 팁으로 주시겠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도 자유여행에 조금 들뜬 감이 없지 않았다. 나는 무슨 10달러냐며 악을 썼지만 이미 어머니는 기부천사가 되어버린 뒤였다.

    - 어쨌든 공연은 시작됐다. 수상 인형극은 보면 볼수록 베트남이 선조들의 역사를 잘 보존한다고 느끼게 됐다. 특히 생활, 전설, 일화 등에서 '물'과 밀접한 그네들의 문화 면면이 잘 드러났다. 별다른 해설이 없어서 내용을 가지고 심도있게 관람하진 못했지만 이국적 풍토가 강하게 풍기던 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베트남에서도 외쳐 롯데리아!

     

     

    - 열심히 공연을 즐기다보니 배가 고팠다. 엄마는 여전히 저녁을 드실 필요가 없으시단다. 나라도 먹어야 할 터인데 오키나와에서 안 좋은 추억이 있기에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은 먹고 싶지 않았다. 길바닥에 앉아서 포 보와 분 짜를 먹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보고 따라해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여행 첫날인 이상 안전에 안전을 기해야 한다. 의외로 나보다 안전에 더 심혈을 기울이시던 어머니는 이런 나를 두고 너무 경계한다고 하셨다. 그러자 내가 오늘 우리가 걸으면서 단 한 곳의 병원도 보지 못했다고 말하니 어머니도 이해하셨다.

    - 그래서 들어간 곳이 롯데리아(절대로 베트남 음식이 맛 없어서 간 건 아니다.....). 불고기버거를 시켰는데 그때 그 시절 맛이다..... 엄마는 맛만 보신다면서 감자튀김을 거의 다 드셨다. 나는 속으로 여행 내내 이럴 수는 없으니 베트남 음식을 한번 더 시도해보겠다며 다짐했다. 뭔가 푸근한 현재에 안주하는 기분은 모험을 좋아하는 나에게 다소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하노이의 밤거리

     

    -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쇼핑을 했다. 체크무늬 헌팅캡 오천 원. 마감 잘 돼보이는 가방 만 원(내가 골랐는데 엄마가 탐내더니 가져갔다). 엄마는 올라오면서 결국 까까머리 직원에게 팁을 건넸다. 사람이 너무 좋아도 탈인데. 나는 그저 이번 여행이 잘 되길 바라는 바람으로 웃어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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