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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롱 베이 수기 <2016년 9월 8일>
    수기/2016 하노이 2019. 11. 30. 15:50

    8일 (하노이 -> 하롱)

     

    - 하롱 베이 가는 날. 일부러 일찍 깼다. 한 6시 반 정도? 물론 어머니가 깨워주시긴 했지만

    아차, 일어나고 보니 어제 마사지 받으러 가기로 했으면서 까먹은 건 아쉬웠다.

    - 오늘은 우리 둘다 오뮬렛 대신 쌀국수를 시켰다. 그래도 베트남 왔는데 분짜도 괜찮았으니 포도 먹을 수 있을 거란 발상. 과연 그럴까, 과연 그랬다. 살짝 매콤하면서도 국물의 깊은 맛이 살아있었다. 그렇지 이제 우리가 원하던 거야. 기분 좋게 아침식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덕분에 시간은 좀 많이 까먹었다.

     

    - 그래서 웨이터가 우리 테이블로 오더니 픽업 차량이 대기중이라고 되도록 빨리 준비해달란다. 그러고보니 체크아웃도 제대로 못했는데, 음…​…​ 1층에 내려가보니 만사가 귀찮아보이던 운전수가 앞에다가 차를 대놓고 써있다. 나는 허겁지겁 체크아웃을 마치는 수속을 밟고 어머니는 셔틀밴에 짐을 싣었다. 자, 이제 출발이다.

    - 케이크를 잔뜩 먹어서인지 속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나는 유독 비행기나 기차는 잘 타는데 자동차는 오래 못 타겠더라. 그래도 우리가 타고 가는 차량이 관광버스가 아니여서 다행이다. 어차피 베트남의 도로 구조 상 1종 대형 차량이 달리기엔 다소 버거워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거기다가 포장이 제대로 안 되있는지 울퉁불퉁한 지형에 차량이 덜컹거리는데 나는 식겁했다! 겨우겨우 어머니가 준 자일리톨을 씹으며 눈을 감고 이어폰으로 라이브카페를 열었다. 더 원 노래를 듣는데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더라. 울렁거림이 조금 덜 한게 기분이 좋기도 했다.

    - 하노이에서 하롱 베이까지 가면서 느낀 건 두 가지다. 여긴 고속도로가 제대로 된 게 별로 없구나. 근교는 무지막지하게 넓구나.

     

     

    이상한 휴게소(모자 쓴 남자 존재감 무엇?)

     

     

    - 중간에 무슨 이상한 장소에 들렀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휴게소라고 해야하나? 무튼 여기서 내가 보석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았다. 나는 장신구 코너에서 눈이 휘동그레해졌으며 엄마는 화장실에 갔다오다가 그런 나를 보고는 혀를 끌끌 찼다.​ 아, 루비도 예쁘고 다이아몬드도 좋은데 나중에 돈 벌어서 사파이어는 꼭 갖고 싶다.

    ​- 아 이걸 말 안 했네, 탑승객은 총 여섯 명이었는데 우리 일행을 제외하곤 전부 서양인이었다. 그래서 가이드가 영어로 설렁설렁 말하고 후딱 가버렸는데 그게 우리한텐 조금 곤란했다. 내가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것. 그렇다고 엄마가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참 무사안일했다.

    - 다행히 같은 탑승객을 만나서 다시 물어볼 수 있었다. 정거장에서 만난 독일인 커플은 여기서 기다리는 게 맞다고 얘기해주었다. 땡큐. 그 쪽은 뭐 샀어요? 아니요. 좀 그래서. 맞아요. 이거 다 마케팅이에요. 이런 식의 잡담을 나누고는 나왔다.

    - 엄마가 자꾸 과자를 사려하기에 만류했다. 잘한 선택이었다.

    - 가이드가 다시 와서 우리를 태우고 출발했다. 여전히 덜컹거리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뭐 어쩌겠는가. 나는 껌이나 실컷 씹었다. 하노이에서 하롱까지 가는 길은 역시 인구밀집도가 높아서인지 근교가 넓고 민가가 많았다. 고속도로가 있으면 정말 편할 것 같은데 여기 도로 사정이 참 아쉬웠다.

    - 우여곡절 끝에 하롱 도착.

     

     

     

    선착장에서

     

     

    8일 (하롱)

    - 로비에서 승선을 위한 간단한 수속을 밟았다. 웨이터가 뭘 시킬 거냐고 묻자 엄마는 곧장 커피를 선택. 나는 추후 일정에 베트남식 환영인사로 음료를 대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시키지 않았다. 4만 5천 동 정도 낸 거 같은데 무척 비쌌다. 뭐 그래도 엄마가 좋아하시면 됐다. 그나저나 옆의 독일인 부부는 맥주를 주문했는데 명불허전 독일 사람들이라며 엄마와 나는 웃었다. ㅋㅋ

    -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내리자마자 마구 찍어댔다. 날씨는 조금 나빴지만 뷰가 상당히 괜찮았다.

     

     

     

    WELCOME!

     

    -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특별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승선 시작, 당연하리만치 큰 오산이었다. 관광버스가 크루즈 앞에 서더니 서양인들이 무더기로 내리는 게 아닌가. 10명 남짓이나 될 인원은 그새 46명으로 늘었다.

    - 222호 카빈을 배정받았다. 뷰가 은근 괜찮은 자리였다. 3층 갑판에서 베트남식 환영인사를 치르고 점심식사를 하러 1층에 내려갔다.

     

    엠로드 크루즈의 선상 레스토랑 

     

     

    - 프랑스 증기선을 개조해 만들어서인지 제법 고급스런 유럽식의 분위기가 난다. 가이드북에서 찾아 예약한 거라 우리말고 다른 한국인도 있을 줄 알았는데 동양인이 베트남인 승객 4명과 우리 뿐이란다. 엄마와 나는 무슨 베트남이 아니라 유럽에 온 것 같다며 신기해했다.

    - 식당 안쪽 자리를 배정받았는데 스태프가 왔다갔다 하는 자리라 다소 부산스러웠다. 그리고 하필이면 파리들이 이쪽에만 꼬여서 갈 생각을 안 하기에 식사에 방해가 됐다. 음식은 대체로 맛있었는데 초밥은 딱 봐도 생선 1 / 밥 2 비율로 만들어서 별로였다. 한 번 먹어보고 쳐다가도 보지 않았다. 빵류가 가장 최고였다. 나는 호밀빵을 열심히 구웠다.

     

     

     

    독일인 부부와

     

    - 식사를 마친 뒤 2시부터 3시까지는 자유시간이었다. 그래서 엄마와 나는 선두에 나가 하롱 베이의 경치를 관람했다. 엄마는 거대한 바위 딱 하나 있는 걸로 예상했건만 너무 방대해서 놀랐단다. 독일에서 온 또다른 부부가 있기에 서로 되도 않는 영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뮌헨이나 함부르크나 도르트문트 뭐 이런 도시들은 아는데 지방 소도시에서 온 것 같았다. 쾰른 옆에 있는 도시라는 데 잘 모르겠다.

    - 엄마는 하롱베이가 거대한 바위섬 하나로 되어 있는 곳인 줄 알았건만 직접 와보고 많이 놀랐다고 하셨다. 여기가 중국이랑 베트남이랑 세 차례 씩이나 해전을 벌였던 곳이래요. 대부분 베트남이 이겼지만. 나는 어머니께 사전에 주워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엠로드 탐험대 

     

     

    ​- 독일인은 나중에 다시 보자며 자기네 카빈으로 들어갔다. 우리 역시 카빈에서 몸을 뉘이고 쉬던 중, 크루즈는 세 시 경에 씅솟 동굴에 들어섰다. 아마도 안으로 들어가겠지. 전격적인 탐험의 시작이다....! 평범한 석회암 동굴이었지만 내게는 처음 가본 터라 굉장히 신비로워보였다.

    - 중간에 길을 잃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우리가 다른 관람객들보다 훨씬 앞으로 온 것이었다. 나는 훨씬 뒤쳐서 걷고 있는 줄 알고 괜시리 어머니를 재촉해서 맨앞으로 와보니 우리가 건너온 반대편으로 현지인 가이드가 지나가는 게 아니었겠는가. 엄마는 이럴 줄 알았는데 혹시 몰라서 말을 안 했다고 했다. 먼저 가세요. 아니에요 여기 있을게요. 가이드는 멋쩍어하며 빙 돌아 우리에게 왔다. 기다리는 동안 동굴 안이 의외로 습해서 죽는 줄 알았다. 숨쉬기가 여간 불편해야지.

    - 가이드 그녀는 나와 비슷한 또래임에도 홀로 하롱에서 가이드로 일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일찍이 외국 문물을 받아들인 듯 영어를 상당히 잘해서 조금 꿀리기도 했다. 물론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직업이니 비교조차 안 되리라는 건 알았지만 아쉬운 마음에 이렇게 적게 된다. K-POP을 좋아한다길래 두유 노 빅뱅? 두유 노 블랙핑크? 실없는 얘기나 했다. 기념으로 사진도 한 장 같이 찍었다(잘 안 나왔지만).

     

     

     

    좀 사주세요 

     

    - 동굴 탐험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해상에서 잡상인이 배를 타고 우리 크루즈로 향해 오길래 신기해서 손을 흔들었더니 뭐 하나만 사달라고 되도 않는 영어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노 머니, 노 머니, 라면서 돌려보냈는데 지금 생각해보건대 내가 여행까지 와서 너무 짠돌이처럼 굴었던 것 같다. 가득이나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모르는 베트남 해상에서 물품을 진열하고 직접 노를 저어 오는 그녀들의 노고를 생각하니 솔직히 내가 좀 너무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여행이 워낙 재미있어야지 말이다. ㅎㅎ.....

     

     

    팬케이크 타임

    - 쉬는 시간. 간식으로 팬케이크를 주길래 대충 먹었다. 팬케이크의 비주얼이 대충이었기 때문이다. 서비스를 제공할 거면 확실하게 해야지 이거 원, 많이 아쉬웠다. 나랑 이야기를 나눴던 독일인들은 이 배에 승선한 자국민이 자기네들 뿐이라는 걸 알았는지 그새 한 팀으로 뭉쳐서 독일어로 쏼라쏼라 이야기보따리를 펴댄다. 아, 외로운 한국인 둘은 어찌할꼬. 솔직히 조금 암담했다. 나는 분명 한국의 유명한 가이드북이 추천해준 크루즈를 예약했을 뿐인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가 있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던 것 같다. 우리가 여행했던 날짜를 보면, 학생들은 새학기를 시작해서 바쁘거나, 직장인들은 이미 여름휴가를 끝낸 터이고, 휴가 계획이 있는 사람조차 설 연휴를 고대하고 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고도 합당한 수순이었다. 이 경우 유럽인들이랑 어영부영 잘 어울려서 놀면 좋은데 엄마는 영어를 못하고 나도 정크한 영어 실력으로 겨우겨우 엄마의 보호자로 버티고 있는 수준이라 하, 답이 없었다.

     

    티톱 섬 

     

     

    - 다음 일정으로 티톱 섬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산 정상으로 트래킹을 하거나 수영. 엄마는 은근 수영을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망연자실해있던 나는 선실에 들어가 쉬겠다고 했다. 엄마는 아무쪼록 상관없다고 했다. 아무래도 실망스럽지만 일정 도중 내가 간간히 휴식이 필요하단 걸 깨달으신 듯했다.

    - 나는 2층에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담배가 무척이나 피우고 싶었다. 멀뚱히 서 있으니 부선에 탄 남자 가이드하고 네덜란드 사람들이 나를 발견. 그들은 나에게 같이 가자고 한다. 내가 머뭇거리자 유럽인들도 우리 사정을 알았는지 기다려줄테니 빨리 오라고 한다. 하긴 여기까지 와서 아무런 추억도 만들지 않으면 나약한 여행만 될 뿐이다. 우리가 왜 여기 해상까지 왔는가? 갑자기 오기가 들었다. 그래서 엄마가 쉬고 있는 카빈에 가서 같이 가자고 말하고 우리는 부선의 가장 마지막 승객이 되었다.

    - 서양인들은 대체로 수영을 즐겨했는데 우리는 수영복이 없어서 산을 오르기로 했다. 예전에 광명의 구름산을 타본 적이 있는데 숲 냄새가 좋고 은근 형용하기 힘든 산행의 쾌감이란 게 있어서 트래킹을 했다. 물론 네덜란드인들을 무작정 따라간 건 아니다. 육십 살 먹은 노인이 어찌나 장성하신지 선두로 치고 올라가시는데 나도 그 사람을 뒤따르고 싶었지만 엄마가 하도 지쳐해서 천천히 갔다.

     

     

    등정 도중에 찍은 사진. 배가 정말 정말 많다!

     

     

    - 이 글을 쓰면서도 느끼는 건 정상에 오르길 정말 잘했다는 것.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사진도 찍었다. 티톱 섬에서 보는 해질녘 하늘은 아름다웠다. 마치 우리가 셔틀밴으로 울퉁불퉁한 길을 지날 때 극심한 비를 뿌린 것에 대한 보상인 것마냥. 하늘은 수고했다면서 우리에게 웃어주었다. 차디찬 공기가 은근히 따스하게 느껴지는 한때였다.

    - 저녁식사를 했다. 메뉴는 비슷했는데 산행 뒤의 섭취라 음식이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하롱 베이의 하루도 저물어 간다

     

    - 엄마도 아까 전 나와 같은 심정이었나보다. 나를 믿고 따라왔건만 한국인은 콥빼기도 안 보이고 유럽인들 투성이인가. 마치 유럽 여행에 온 것 마냥.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쉬고 싶어 했는데 그래서 일부러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끌고 나와 오징어 낚시를 했다. 오징어 모양 찌를 맨손으로 던져 물고기를 낚는 진기한 방법이었다. 물론 나를 위시해 참여한 사람들은 한 마리도 잡지 못 했다. 나는 좀 더 해보고 싶었는데 나랑 같이 하던 서양인 둘이 우리 이제 간다고 말해주길래 나도 그만두었다.

    - 선상의 어둑한 경치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다. 가족이라던지 이사라던지 중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깊게 나눌 수 있었다. 그럼으로써 지금 내가 여기 있을 수 있는 이유가 엄마가 피땀 흘려 노동했기 때문이라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어마어마한 감사를 어떻게든 글로 표하고자 썼다. 하롱 베이 투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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